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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환자의 운전 문제는 사회적 안전과 직결된 민감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운전은 자율성과 직결된 활동이지만, 인지기능 저하로 인한 사고 위험 증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본 글에서는 치매 환자의 운전 능력 평가 기준, 운전 금지 관련 법률, 그리고 국내외 제도 비교를 통해 안전하고 균형 잡힌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
운전은 자유인가, 위험인가 – 치매환자와 사회의 딜레마
운전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자율성과 독립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특히 고령자에게 운전은 병원 방문, 장보기, 사회적 활동 참여 등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며,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치매와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운전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안전과 직결된 사회적 쟁점이 된다. 치매는 기억력, 판단력, 시공간 인지, 집중력 등 운전에 필수적인 여러 인지 기능을 저하시킨다. 이는 교통법규 준수, 상황 판단, 위기 대처 능력을 떨어뜨려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 실제로 치매 초기에는 환자 본인이 인지 기능의 저하를 자각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운전을 지속하는 사례가 많고, 가족이나 사회는 그에 대한 개입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이에 따라 각국에서는 치매 환자의 운전 능력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거나 일정 기준 이상일 경우 면허를 제한 또는 취소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관련 법률과 제도 개선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환자와 가족, 사회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영역이며, 법적·윤리적 고려가 모두 요구되는 복합적 사안이다. 이 글에서는 치매 환자의 운전 금지 기준, 관련 법률, 실제 행정 절차 및 국내외 제도 비교를 통해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논의해보고자 한다.
치매환자의 운전 관련 법률 기준 및 평가 절차
한국에서 고령 운전자의 면허 관리 제도는 2019년부터 강화되었으며, 특히 치매 환자와 같은 인지저하 질환을 가진 운전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제가 적용된다. 현재 치매 환자의 운전 자격 관련 법적 기준은 「도로교통법」 및 「자동차운전면허시험 업무처리 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첫째, 만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3년마다 인지기능검사(고령운전자 교육)**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여기서 인지기능검사는 간단한 지필검사 형태로, 시공간 인지, 단기기억, 판단력 등을 평가한다. 검사 결과 이상이 있을 경우, 정밀검사 및 의사 소견서를 통해 치매 여부를 판단받게 된다. 둘째, 치매 진단을 받은 경우, 해당 정보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연계되어 도로교통공단에 통보**된다. 이를 통해 경찰청은 운전면허 적합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으며, 필요시 면허를 제한하거나 정지,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진다. 셋째, 도로교통법 제87조는 ‘질병으로 인하여 안전운전에 지장이 있는 자’의 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여기에 치매도 포함된다. 단, 치매의 단계가 초기인지 중등도, 중증인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중등도 이상일 경우 운전 금지** 조치가 내려진다. 넷째, 본인의 신청 또는 가족의 요청으로도 운전면허 자진반납이 가능하다. 경찰청은 자진반납을 유도하기 위해 **교통비 지원**, **지역상품권 제공**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실제 반납률은 낮은 편이며, 이는 자율성 상실에 대한 고령자의 심리적 저항, 대중교통 접근성 문제 등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다섯째, 운전 정지나 면허 취소 결정이 내려질 경우, 당사자는 행정심판 또는 이의신청을 제기할 수 있다. 이때는 전문의의 판단, 인지기능 평가 결과, 운전 시뮬레이터 검사 결과 등이 함께 검토된다. 또한,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반 운전 시뮬레이터나 VR 시스템을 통해 실제 운전 상황에서의 반응을 측정하는 방식도 도입되고 있으며, 이는 보다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평가 지표로 주목받고 있다. 해외의 경우, 일본은 ‘운전 갱신 시 인지기능 검사’를 의무화하였고, 일정 점수 이하일 경우 반드시 병원 진료 후 면허 갱신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독일, 호주 등도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전문가 판단에 따라 면허 유지 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다. 즉, 치매 환자의 운전은 단지 진단 유무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실제 운전 능력과 인지 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각국의 제도가 진화하고 있는 추세다.
균형 잡힌 제도 설계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의 필요성
치매 환자의 운전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나 자유 의지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사회 이슈이다. 운전은 고령자에게 중요한 삶의 수단이지만, 동시에 치매로 인한 사고는 개인뿐 아니라 타인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치매 환자 대상 운전 규제는 일정 수준의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초기 치매 환자가 자신 또는 가족의 눈을 피해 운전을 계속하는 사례, 진단을 회피하거나 인지검사를 기피하는 경우 등은 제도의 실효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단순히 규제 중심의 접근이 아닌, **적극적인 교육, 조기 진단, 가족과의 소통 강화, 자진 반납 유도 프로그램 확대** 등 종합적인 대응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교통약자를 위한 대체 이동 수단 확충과 지역사회 기반 이동 지원 시스템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고령자의 삶의 질도 지킬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도들이 치매 환자 본인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사회 전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설계’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치매 환자의 운전 문제는 법률, 의학, 가족, 사회적 가치가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이기에, 단일 해법이 아닌 다차원적 접근과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