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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인근에는 치매 환자들을 위한 특별한 마을이 존재합니다. 이곳은 단순한 요양시설이 아니라, 치매 환자들이 존엄성과 자율성을 유지한 채 살아갈 수 있도록 설계된 공동체 기반의 공간입니다. 덴마크 복지국가의 철학이 집약된 이 마을들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이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코펜하겐 근처에서 운영되고 있는 대표적인 치매마을의 운영 방식과 설계 철학, 그리고 주민과 환자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코펜하게 치매마을의 설계 특징
코펜하겐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치매마을 '슬로트후르츠파르켄(Slotshaveparken)'은 치매 환자들이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설계된 마을형 시설입니다. 이 마을은 병원이 아닌 ‘생활공간’이라는 점에서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실제 마을처럼 구성된 이곳은 작은 슈퍼마켓, 카페, 미용실, 정원, 우체국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환자들은 보호자 없이도 자유롭게 이동하며 이 공간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건물들은 모두 단층 또는 저층 구조로 되어 있어 낯선 공간에서의 불안을 최소화하고, 모든 통로와 문에는 시각적 혼란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제거한 디자인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건축 재료나 색상도 환자의 인지 기능을 고려하여 따뜻하고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자연 친화적 소재가 사용되며, 내부 인테리어 또한 가정집처럼 꾸며져 있어 환자가 낯설지 않게 느끼도록 배려되어 있습니다. 마을 내 거주 공간은 환자 각각의 생활 히스토리에 맞게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며, 예를 들어 농촌 출신 환자에게는 전통 농기구나 곡식 모형을 배치하는 등 환자의 과거 기억을 자극할 수 있는 세심한 설계가 특징입니다. 외부 출입이 가능하지만 관리 시스템은 철저히 마련되어 있어 실종이나 사고 위험은 최소화되고 있으며, 환자들은 마치 평범한 마을 주민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치매환자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면서도 안전을 보장하는 덴마크 복지 철학의 실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돌봄 시스템
슬로트후르츠파르켄을 비롯한 덴마크의 치매마을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복합적인 돌봄과 치료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춘 공간입니다. 마을 내에는 의료진, 간호사, 사회복지사, 작업치료사, 심리상담사 등 다양한 전문가가 상시 배치되어 있으며, 이들은 환자의 건강 상태뿐 아니라 정서적 변화까지 면밀히 관찰하고 대응합니다. 매일 아침에는 환자 개개인의 상태를 공유하는 회의가 열려, 그날의 컨디션과 필요한 지원 내용을 팀원 전체가 공유하고 개입 방향을 설정합니다. 예를 들어 한 환자가 최근 불안 증세를 보였다면, 그날은 미술 치료나 음악 활동 위주로 일정을 조정하고, 감정 조절이 잘 되는 시간이 확보되도록 돕습니다. 또한 이 마을은 ‘자율적 돌봄’이라는 원칙 하에 환자의 선택을 존중하며, 하루 일과를 환자 스스로 계획하도록 유도합니다. 물론 필요한 경우에는 전문가가 부드럽게 개입하지만, 가능한 환자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기본 철학입니다. 가족들과의 소통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져, 정기적인 가족 참여 프로그램이나 온라인을 통한 건강 정보 제공이 이루어지며, 가족이 직접 식사 시간이나 활동 시간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마을 내 모든 돌봄은 의료 중심이 아니라 생활 중심이며, 환자와 가족, 전문가가 함께 어우러져 환자의 삶을 중심에 둔 돌봄을 실현해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가치
슬로트후르츠파르켄과 같은 덴마크 치매마을이 단지 환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이유는, 이곳이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을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일반 주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코펜하겐 근처의 이 치매마을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정기적인 문화 프로그램이나 요리 교실, 음악 공연 등을 기획하고, 환자들과 직접 어울리며 일상의 한 부분을 공유합니다. 이는 환자들에게 ‘나는 여전히 사회의 일원이다’라는 자존감을 심어주며, 동시에 지역사회에도 치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산시키는 긍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또 일부 초등학교와 연계해 아이들과의 교류 활동이 진행되기도 하는데, 이는 세대 간 소통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환자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덴마크는 치매를 단순한 의료적 과제로 보지 않고,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치매마을은 이 철학이 실제 공간으로 구현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지역 행정기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통합적 시스템은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지속 가능하고 인간적인 치매 돌봄 국가로 평가받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결론
코펜하겐 인근의 치매마을은 덴마크 복지국가의 정수가 담긴 공간으로, 단순한 보호를 넘어서 치매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중점을 둔 혁신적 사례입니다. 환자 중심의 설계, 자율적 돌봄 시스템, 지역사회와의 통합은 앞으로의 돌봄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한국 역시 이와 같은 모델을 참고하여 더욱 인간적인 돌봄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시점입니다.